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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건드려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09



건드려













"안돼요... 어차피 마벨 (Mabell)은 질투하고 있는게 분명하다구요..."


"그래서 포기를 하겠다구ㅇ,"



정전이 되었다. 아무리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리플레이 시켜도 어깨가 움츠려 드는 건 막을 수가 없다니까. 그리고 내 앞에 김태형과 이런 대사를 주고 받으려고 하니, 눈 마주치는 기본적인 행동도 못하고 있었다. 아, 원래 말하는 게 이렇게 긴장되는 건가... 간신히 대사 주고 받는 건 끝냈지만 앞으로의 연기들이 더 걱정이었다. 나 정말 괜히 지수 씨 도와준다고 한 건가...



"오빠, 표정 좀 굳혀. 아무리 언니가 앞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방실방실 웃는 장면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언제 방실방실 웃었다고."


"와, 언니 진짜 어이없다, 그쵸? 완전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더니만."


"...그랬나요?"



미안해요, 김태형의 그 꿀 떨어지는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미간 쪽만 바라봤다는 건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연극이 이번주로 성큼 다가온 이상, 김태형으로 인해 떨리는 마음 때문에 연극을 망칠 수는 없어서 나는 앞에 있는 사람이 오징어라고 수백번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태형아, 미안해...





***





"언니, 마지막 씬 연습해봤어요?"


"마지막 씬이요? 그게 뭐였, 아... 키스신이요?"




"응, 물론 입 안 맞춰도 된다고는 했지만 상대가 오빤데, 얼마든지 해도 되잖아요?"


"...한번도 못해봤는데..."


"와, 그럼 저 덕분에 언니 오빠의 사랑이 불타오르겠네요? 꺄-. 언니 좋겠어요!"



좋다뇨... 하긴 다른 씬들은 다 호흡을 맞춰봤지만, 마지막 씬만은 감히 해볼 용기도 없었고 제안도 하지 못했다. 한번은 연습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10분 째 김태형 앞에서 몸을 베베 꼬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얘는 왜 아무 생각도 없어 보여! 정말 아무렇게 키스신을 마무리 지을 모양인가. 대본을 바라보고 있던 김태형은 아직도 우물쭈물 거리는 나 때문에, 대본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눈을 맞췄다.



"너 키스신 때문에 그러지."




"어? 아... 어떻게 알았어?"


"딱 봐도. 그럼 연습 해볼까?"


"...지금?! 여기서? 사람들 오시면 어떡해..."




"연습하고 있었다고 하면 되지."



김태형의 말이 다 맞는 말이라서 내가 차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얘는 정말 여기서 키스신 연습을 하려고 하는지,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제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건 오히려 적응이 될 정도였다. 코 끝이 닿일 거리까지 좁혀지니 너무 긴장돼서 이제는 숨도 못 쉬겠다. 입술이 조금 닿고 나니, 내가 마법 같은 세상에 온 줄만 알았다. 이렇게 떨리는 느낌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입술 사이 벌어진 틈으로 김태형의 혀가 들어왔을 때는 정말 마음 속에 파도가 몰아치는 줄 알았다. 몸 속에 응어리가 몽글몽글 거린다고 해야 할까, 말로 표현을 못할 느낌이었다. 끝이 없을 줄만 알았던 키스신 연습(?)이 끝나고 눈을 떴을 때는 정말 김태형과 1초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대사 연습을 했을 때보다 더 심했다.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어?"




"너무 떨렸어... 연습해놓길 잘했다, 그치. 안 했으면 연극할 때 심장 터질 뻔 했겠네."



나만 떨렸는 줄 알았는데, 시선을 조금 올리니 붉게 물든 김태형의 귀와 해맑게 웃는 입가가 보였다. 사귀면서 김태형과 키스를 하게 될 거라고 물론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만, 우리 둘의 첫키스가 지수 씨의 연극 때문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김태형의 말을 들어보니, 막상 연극 할 때도 걱정이었다. 연극 때라고 안 떨리는 건 뭐야... 많은 관객들 앞에서 키스를 하는데, 이것보다 더 떨리는 거 아니야?!




"너 얼굴 터질려고 해. 바람 쐬러 가자."



알고 있거든! 얼굴이 빨갛다는 것쯤은 충분히 열기가 느껴져서 나도 알고 있었다. 근데 김태형이 확실히 각인시켜주니 오히려 얼굴이 더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내 손을 잡고 대기실 밖으로 이끄니,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볼에 닿여서 살 것 같았다.





***





"사랑해요. ...이젠 더이상 마법을 쓸 수 없게 됐지만, 당신만 있으면 난 뭐든지 괜찮아요."



연극 당일이 다가왔다. 내가 김태형의 눈을 바라보며 이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잘도 내뱉다니, 관객들의 힘은 참 컸다. 그냥 꿈이라고 치자,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는 것 같았다. 나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면 우리 둘의 키스신은 시작된다.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내가 쓰러지면 김태형이 키스를 하게 되는데, 쓰러져 있는 연기 덕분에 눈을 감고 있어서 언제 입을 맞출 지도 모르는 아주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누워 있는 덕분에 긴장감이 아주 조금은 사라졌지만, 김태형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드니 다시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강당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이제 곧 있으면 끝날 연극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는 한이 있어도."



김태형의 마지막 대사도 끝나고 이제는 정말 키스신만 남았다. 이제 숨결도 닿을 거리로 다가와 나는 또 호흡을 멈춰버렸다. 어제처럼 입술이 닿고, 나는 또 몽글몽글 거리는 이 기분을 느꼈다. 특히나 누워있는 탓에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더더욱 떨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키스신이 끝나고 나의 첫 연극은 끝이 났다. 내가 나오지 않을 파트 때마다 지수 씨가 옆에서 괜찮다고 응원을 해준 게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르겠다. 아, 물론 김태형도 마찬가지로...



"언니, 짜잔! 이거 봐요!"


"뭔데요?"



연극이 끝이나고 대기실에서 화장을 지우고 있는데 지수 씨가 내 눈 앞에 폴라로이드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뭐지, 하고 내가 사진을 집어서 자세히 보는데, 이게 뭐야! 김태형과 내가 키스신을 한 장면이 폴라로이드 사진에 담겨 있어서, 또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게 물들여지고 말았다. 



"헤헤-. 제 파트는 다 끝나서 무대 밑으로 내려가서 몰래 찍었어요. 둘 다 얼굴에서 빛이 나네, 이건 특별히 언니한테만 주는 거예요!"




"...고마워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다고 이렇게나 강조를 하는데 고맙다고 말해야지... 고마운 게 맞는 걸까. 옷도 갈아입고 대기실 밖으로 나오니, 나처럼 어느새 자기 옷으로 말끔히 차려입고 기다리는 김태형이 보였다. 얘는 뭘 입고 있어도 잘 생기긴 했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응. 김지수가 오늘 너 피곤할 까봐 내일 밥 사준다는데, 갈 거지?"


"아... 괜찮은데."


"그래도 꼭 사주고 싶다고 했으니까 가. 얘 나한테는 게임 상품권 하나 던져주고 끝냈어."



틱틱 거리는 김태형 모습에, 정말로 두 사람이 남매인가 싶었다. 내 코트 안에 지수 씨가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이 느껴져서 김태형한테 보여줄까 고민을 하다가, 나한테만 준 거라고 거듭 강조하던 지수 씨의 얼굴이 떠올라 미소를 머금고 그냥 김태형에게 팔을 걸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좋은 일 있어? 라며 다정하게 내려다보는 김태형이다. 



"좋은 일 있지. 내가 너랑 연극을 다 해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 지금은 다 끝나서 하는 말인데, 하는 중간에 너무 떨려서 뛰쳐나가고 싶었었어."


"푸흡, 야, 나도 그랬어."



연극이 끝나자마자 마법처럼 대사를 잊어버리는게 신기하다고 말하니, 김태형도 그렇다며 내 손바닥과 마주대 짝짝 쳤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씩 김태형의 입술로 눈이 가, 좀 전의 상황이 자꾸 떠오르긴 했지만 아무렴 어때. 떨리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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