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려
"아... 보강이 1교시라뇨, 말도 안됩니다..."
"졸려 죽겠네..."
옆에서 번갈아가며 설현이랑 하품 릴레이를 뽐내고 있는 중이다. 누가누가 입을 크게 벌리나, 대결하는 것도 아니고 하품이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벌려지는 입 크기만 커지고 있었다. 요즘따라 오전에는 수업이 없어서 늦게 일어나는 탓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1교시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 생각없이 크게 하품을 하던 oo는 문으로 들어온 태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으로 입을 퍽, 가리더니 토끼 눈을 떴다.
"...너도 보강이었어?"
"응, 옆에 앉을게."
태형의 얼굴이 가까이 있으니 어제 일이 자꾸만 머릿 속에 리플레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oo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의가 시작하자마자 졸어대는 설현은 아예 oo의 어깨에 기대어 폭풍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옆에 있는 김태형이 더 신경 쓰였다. 막상 김태형은 펜으로 필기를 참 잘하고 있는데 말이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김태형 몰래 강의실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당연히 옆자리라 그런지 손목이 붙잡혀버렸다. 덕분에 설현이한테 억지로 웃으며 먼저 가보라 말했고, 눈치가 빠른 김설현은 내 앞에서 빠르게 사라져주었다. 아, 이럴 때만 참 눈치가 빠르지... 하하하. 어색해 죽겠네.
"이제 수업 끝이지?"
"어? 응... 끝이지."
"그러면 같이 강당 좀 가줄 수 있어? 지수가 오늘 공연한다고 꼭 너랑 보러오라고 했는데 이제야 기억나서."
"아, 지수 씨가?"
김태형이랑 같이 있는 건 참 어색하지만 지수 씨가 하는 공연은 보고 싶어서 뭐라 거절도 못하고 김태형 옆에서 우물쭈물 대며 강당 쪽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어제 대화로는 우리 둘 사이가 참 어정쩡 했다. 서로 좋아한다고는 말했지만, 사귀자고는 말 안했고... 그럼 그냥 서로 좋아하는 사이에다가, 사귀지는 않는... 아니, 뭐 이런게 다 있어?! ...말도 안되잖아. 이 상황에서 내가 김태형 붙잡고 우리 무슨 사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무슨 생각해?"
"아...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
"너 오늘따라 되게 어색해 하는 것 같네."
"...어? 아닌데? 그래보였어?"
아, 김태형... 너 언제부터 그렇게 눈치 고단수였냐.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보니 이제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어색한 웃음만 허허, 하고 흘릴 뿐... 나 이제 못하겠다고...
타이밍이 정말 끝내줬다. 어색해서 더이상 못참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딱 마침 강당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둘을 보고 있었던 건지, 지수 씨가 우리 둘 사이로 들어와서는, 언니- 하면서 예쁜 미소를 보여주었다. 언제봐도 지수 씨 웃는 걸 보면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니까? 아... 역시 천사야. 아, 이게 아니지... 지수 씨를 보다가도 나는 조금씩 김태형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흘깃- 바라보았다.
"특별히 완전 좋은 자리로 표 달라고 했어요. 오빠랑 즐데해요, 언니!"
"즐데?"
"즐거운 데이트요!"
"고마워요... 아, 저, 지수 씨!"
잠시나마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지수 씨도 나를 따라왔다. 손을 씻으니 옆에서 지수 씨가 좋은 자리로 구했다며 헤실헤실 웃었고, 나도 따라 웃다가 문득 지수 씨한테 이 얘기를 해주면 상담을 잘해줄 것만 같아 손을 다 닦고 무작정 지수 씨 손목을 붙잡아버렸다.
"아... 듣고보니 언니 말처럼 애매한 사이긴 하네요. 오빠는 왜 그렇게 어색하게 만들어가지고."
"...헤헤..."
"언니, 잘 들어요! 이건 백프로 오빠 잘못이니까 오빠가 알아서 처리하게 해요. 오빠가 저렇게 얼굴에 철판 깔고 대하고 있으니까 언니도 똑같이 아무렇지 않게 대해버려요. 그럼 분명히 오빠가 먼저 뭐든지, 뭐라고 말할테니까."
난감할 만도 하지만, 지수 씨는 생각보다 내 얘기를 너무 잘 들어줬다. 해결할 방법이 뭣도 없는 이 상황에서 제일 좋은 답을 해주며 내 손을 두 손으로 붙잡더니, 힘내요 언니! 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지수 씨다. 역시 지수 씨는 요정이 분명해... 지수 씨는 어느새 대기실로 들어갔고, 김태형과 단둘이 남은 나는 지수 씨 말처럼 더이상 어색해 하지 말자며 혼자 아자아자! 다짐을 했다.
공연장 입구 앞에 앉아있는 김태형 옆자리에 앉으니, 왔어? 라며 나에게 자연스럽게 따뜻한 음료를 쥐어주었다. 아, 고구마라떼네. 맛있겠당. 아무 생각없이 한모금 마시는데 너무 뜨거워서 순간 손에 쥐고 있는 라떼를 놓칠 뻔 했다.
"괜찮아?!"
"어, 어?"
김태형은 내가 라떼를 놓칠 뻔 한 걸 봤는지, 재빨리 자기 손으로 라떼를 가져가더니 턱을 자기 앞으로 돌려서는 데인 입술을 손가락으로 슥슥 매만졌다. 김태형 손가락이 닿일 때마다 따끔 따끔 거려서 인상을 찌푸리는데, 김태형도 나를 따라 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데인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입술을 만지니까 기분도 몽글몽글 한게...
"나 괜찮은데..."
"아프잖아, 계속 인상 찌푸리고 있으면서. 잠깐만 기다릴래? 약 사올게."
"아니야, 곧 공연인데... 끝나고 내가 살게! 걱정하지마."
"괜찮겠어? 얼굴도 빨간데."
"어? 아, 아닌데? 나 진짜 괜찮아!"
얼굴도 빨갛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김태형의 시선을 휙 피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쟤는 저런 말(?)을 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거야! 정말 김태형 말대로 손을 볼에 데니, 후끈 후끈 거렸다.
***
공연을 보고 참 생각이 많아졌다. 그 중,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지수 씨가 너무 예뻤다.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요정님이 확실하다, 지수 씨는. 또 머릿 속에 지수 씨의 예쁜 얼굴이 떠올라 괜시레 지수 씨랑은 다른 내 생머리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았다. 그리고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서 그런가, 설레는 장면이 얼마나 많던지... 내가 다 연애하는 기분이 들고, 참 좋다가도 씁쓸했다(?)
어느 새 훌쩍 다가온 겨울 같은 날씨를 원망하다가도, 아직까지도 아무 반응이 없는 김태형을 몰래 휙 째려보다가 그만뒀다. 나 혼자 이게 뭐하는 거람, 착각도 유분수지. 김태형이 한 말에 너무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가도 아무 생각없이 걸어서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못 보고 있었다. 덕분에 계단이 있는지도 모르고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는데, 옆에 있던 김태형이 내 팔을 꽉 붙잡아, 다행히도 넘어지지 않고 김태형 몸에 메달려(?) 있을 수 있었다.
"괜찮아? 앞에 잘 보고 걸어야지."
어느새 우리집 앞까지 걸어와 인사를 하려고 김태형에게 손을 흔드는데, 그 흔드는 내 손을 붙잡더니 살짝 끌어당겼다. 덕분에 나랑 김태형 사이는 한참이나 가까워졌고, 역시나 내 심장은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 김태형은 무릎을 살짝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좀 전에 데인 내 입술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해가 져서 천만 다행이다. 분명 내 얼굴은 토마토색일 거야.
"흉 지면 안되니까 약 발라줄게."
약은 또 언제 사왔데... 어느새 손가락에 연고를 짜 내 입술에 슥슥 발라주고 있었다. 김태형 손가락이 닿는 곳마다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왜 나 혼자만 이렇게 호들갑 떨고, 신경 쓰고, 부끄러운 걸까... 막상 김태형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자, 집에 가서 수시로 발라줘."
약을 다 바르고 내 손에 연고를 쥐어주더니, 잘 발라주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설레고 좋지만, 뜻을 알 수가 없어 마냥 신경이 쓰였다. ...그냥 먼저 말해버릴까, 우리 무슨 사이냐고. 그럼 이 상황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복잡한 내 머릿 속은 몰라주는 건지, 김태형은 싱글벙글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oo야, 우리 사귀자."
"...뭐?"
"나는 당연히 어제부터 우리가 사귀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좋아한다고 말만 했더라고. 네가 신경 쓰고 있는게 눈에 보이잖아. 근데 신경 쓰고 있는 얼굴도 얼마나 예쁘던지."
"...아."
"그럼 우리 사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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