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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건드려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06



건드려














"야아, 김태형-! 너 왜 자꾸 춤 추면서 걸어?"



간신히 업고 박지민에게 수고하란 말을 남기고 oo네 집까지 업고 오는데 계속 내려달라고 웅얼웅얼 말하는 탓에 내려줬는데 자기가 계속 비틀대면서 걷고 있으면서 나보고 왜 춤을 추며 걷냐고 웃어댄다. 그 웃음에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얘는 술에 취해도 이렇게나 귀엽네.



"oo야, 집 얼른 들어가야지. 너 추워. 다시 업어줄까?"


"아-니. 나 혼자 잘 걸을 수 있거든. 너 집 가. 네가 계속 이유 없이 잘해주니까 혼자 오해하잖아, 내가!"


"어?"




"나한테 잘해주지 말라고."



살짝 어눌한 발음이지만 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oo한테 잘해주는 건 확실히 맞다. 근데 이유없이 잘해주다니, 난 그렇게 천사가 아니다. 뭘 바라고 여태동안 oo한테 이렇게 대하고 있었던 건데, 전정국 말대로 애가 눈치가 하나도 없는 게 맞구나. 얘를 어쩌면 좋담. 너무 귀여워서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다.



"이유없이 잘해주는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너 나한테 바라는 거 있구나?!"


"바라는 거 많지, 너한테."


"뭔데? 특별히 들어줄게, 내가."



들어준다고? oo가 내 얘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일 지는 뻔했다. 당연히 당황스러워하겠지. 그러다가 좋게 좋게 말을 돌리면서 거절을 하려나. 내 생각과 반대로 돼서 oo와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고 해도 문제다. 이렇게 좋은데 어떻게 맨날 얼굴을 마주치면서 얘기해. (답정너1) 사귀면 뽀뽀도 해야 할 텐데... 떨려서 어떡하지? (김칫국2)



"내일 말할게. 내일은 너 술 마시지 말고 기다려줘."





***





"용캐도 이 시간에 깼네."



일어나자마자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민윤기 얼굴이었다. 일어서서 날 밑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민윤기 표정은 한심하다, 그 자체였다. 오빠의 말에 몇시지 싶어서 거실에 있는 큰 시계 쪽으로 눈을 돌리며 하품을 하는데, 뭐? 1시?! 설마 새벽 1시일 리는 절대 없고... 그리고 오늘이 주말일 리도 절대 없고... 학교를 안 가는 날일리도 절대 없겠지...?



"...나 학교는?"


"땡땡이 쳤잖아. 손 교수님께서 오늘 결석하면 F 준다고 하셨는데."


"...구라치지마, 미친 놈아! F 받으면 나 졸업 못하거든? 오빠가 내 인생 책임질 거야?!"


"내가 네 인생을 왜 책임지냐? 지가 김태형한테 업혀 들어 온 주제에. 너희 이제 본격적으로 사귀냐?"



김태형? 업혀? 사귀어? 갑자기 내 전두엽을 강타한 오빠의 말들을 골똘히 잘 생각하다보니 까먹고 있던 어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보니 왜 아까 전부터 김태형 얼굴이 이렇게 아른 거리나 했더니, 내가 김태형한테 업혀 들어왔다고? 말도 안 된다.



'나한테 잘해주지 말라고.'



"아악!"




"아, 왜! 공룡이냐, 왜 소리를 질러."



순간 내가 했던 말이 주르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니,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저딴 말도 안되는 말을 내뱉은 거지? 어제의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나 김태형한테 연락이 온 건 아닐까, 휴대폰을 찾아 켰는데 의외로 김태형에겐 아무런 연락이 없고 전정국과 박지민에게서만 폭탄 같이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아, 이것들은 쓸데없이 왜 이래? 그냥 맨 위에 있는 박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설마 이제 깼냐?"


"응, 그래서 학교도 못 갔잖아."


-"그럴 줄 알았다. 너 어제 나랑 술 마신 건 기억 나냐?"


"아, 너랑 마셨구나? ...김태형이랑 있었던 것도 기억 안 나."


-"꼴 좋다. 아까 김태형 봤는데 너 어딨냐고 묻더라. 집에 찾아가라고 하니까 부끄럽다던데."



부끄러워...? 아, 진짜 어쩜 좋냐. 차라리 필름이 확 끊겨버리지, 왜 쓸데없이 존나 기억을 잘해, ooo야... 박지민과 전화를 끊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같이 술 마신 것도 아닌데, 나 데려다주려고 그까지 와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어떻게 연락을 하냐는 건데... 그러다가 문득 내 머릿 속에 요정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며칠 전에 지수 씨 번호를 받았는데, 내가 살아생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언니! 전화해주셨네요?"


"아, 네에... 지수 씨, 혹시 김태형 뭐하고 있는지 알아요?"


-"음, 오빠 아까 수업 끝나서 집에 갔을 걸요? 언니 보러 가고 싶다고 했는데 부끄럽다나 뭐라나, 그랬어요."


"아, 그렇구나..."


-"언니, 제가 끼어들긴 좀 뭐 한데, 언니가 한번만 먼저 연락해주시면 안돼요? 우리 오빠가 좀 이럴 때만 좀 소녀 같아서 부끄러움이 많거든요."



지수 씨도 박지민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눈 딱 감고 연락해보자, 싶어서 정말로 눈을 감고 김태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번 갔는데, 심장이 백만배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김태형이 아예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던 모양인지, 신호음이 한번 밖에 안 갔는데도, 바로 응, oo야 하고 전화를 받았다. ...혹시 내 전화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아, 어제 나 데려다줬다면서...?"


-"아, 응. 박지민이 너 취했다고 문자왔길래 걱정돼서."


"아, 고마워... 내가 폐 안 끼쳤지?"



걱정된다고? 그렇게 도키도키한 말 막 내뱉지 말라고... 이자식아. 떨리는 심장을 붙잡고 겨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 젠장... 원래 고맙다는 말이 이렇게 하기 힘든 거였나, 식은 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폐는... 그런 거 없어. 너 어제 한 말 기억해?"


"...어제? 어... 응, 기억해."


-"그래? 다행이다. 컨디션 괜찮으면 집 앞에 나와줄래?"



'내일 말할게. 내일은 너 술 마시지 말고 기다려줘.'



어제 김태형이 했던 말과 겹쳐서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아무 생각없이 거울을 봤는데 내 꼴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아나, 곧 김태형 온다고 했는데 나 어쩜 좋아! 머리도 안 감아서 내 머리에 물미역을 갖다붙인 줄 알았다. 머리 감을 시간조차 없어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밖에 날씨는 생각도 안하고 그냥 뛰쳐나와 버렸다. 혹시 내 얼굴 보고 정 떨어지거나... 안 그랬으면 좋겠다.




"너 또 날씨 생각 안하고 막 나왔지."




"아... 네가 얼른 나오라고 했잖아..."



이제 언뜻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해도 져서 그런가. 김태형은 익숙하게 자기가 메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둘러주었다. 그런 행동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을까, 김태형의 말을 이해하는데 잠시 몇 초가 걸렸다.



"나 너 좋아해."


"...어?"




"좋아해. 난 네가 다 눈치 챌 줄 알았는데, 나 그렇게 착한 성격 아니야. 남들한테는 너랑 똑같이 안 대해."



그래, 김태연 일로 인해서 그건 잘 알고 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물론 지금 나온 것 자체가 무슨 일이 터지긴 터지겠구나, 하고 예상을 하고 나온 건 맞지만 막상 그 상황이 맞닥들이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여태동안 내가 한 생각들도, 다 김태형을 좋아하지 않으면 들지 않은 생각들이니까.



"네가 좋아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너한테 잘해주는 거야."


"..."


"oo야, 좋아해."



이젠 아예 각인을 시키 듯 내 이름을 부르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만 얼굴이 붉어져 오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형은 내 행동을 보더니, 함박 웃음을 짓더니 내 볼에 두 손을 대고 살짝 올려 저와 눈을 마주치게 하더니, 너도 좋다고? 하고 재차 물었다. 아, 폭발해버리면 어떡하지...?



"응..."


"말해주면 안돼? 좋아한다고."



얘가 정녕 내 심장을 다 터지게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래, 네가 원한다면 내 심장 쯤이야, 희생할게. 김태형과 눈을 못 마주치고 있다가, 이런 말은 눈을 마주치고 해야 할 것 같아 겨우 겨우 눈을 맞췄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심호흡도 쉬었다. ooo 인생 중에 말하는게 이렇게 어려운 지 처음 알았다.



"좋아해,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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