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1/건드려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08



건드려













김태형이랑 사귄지 며칠이 흘렀는데, 얘는 참 한결 같다. 물론 이 짧은 며칠 만에 사람을 판단하기에는 좀 그렇긴 하지만. 근데 항상 소름 돋을 때가 있단 말이지. 그럴 때면 나도 순진하기만 한 줄 안 김태형이 좀 무서워지긴 했다.



"아, 오빤 좀 내 옆에 붙어있지마."


"너 이제 남친 있다고 오빠 버리기야?"


"언제부터 날 그렇게 좋아했다고? 어이 없네."



요즘따라 오빠가 학교에서 아는 척을 얼마나 하던지, 과거에 아는 척을 하면 치를 떨어댔던 오빠 표정이 이젠 기억도 안 난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저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학교에는 정말 이상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다. 내가 김태형이랑 사귀는데, 민윤기랑 바람을 핀다 어쩌나... 이렇게 된 거, 민윤기는 그냥 우리 사이(?)를 다 밝혀 버리자는데 난 정말 싫었다. 그냥 평소처럼 길에 굴러다니는 쓰레기 취급 해주는게 훨씬 나은데 말이야...



"태형아, ooo 걔 있잖아... 너랑 사귀면서 왜 맨날 윤기 선배랑 같이 다닌데? 바람 피는 거 아니야?"


"oo 일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더 해."


"...야, 나는 너 걱정해서 말해주는 건데..."


"그러니까 누가 걱정 해달래? 필요 없거든."



설현이 말을 들어보니까 온갖 여자 애들한테 다 이런 식으로 대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내가 나타나면 언제 그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는 듯, 해맑게 웃으면 나한테 달려오곤 그랬다. 그럴 때마다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뭐 어때. 이게 다 민윤기 때문이다. 사촌동생이 평범하게 연애하는 것도 못하게 하네! 이렇게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저렇게 태평하게 밥을 먹고 계신다. 어우, 한대만 때려주고 싶네.



"뭘 그렇게 보냐, 이 오빠가 그렇게 잘 생겼어?"


"하하하. 아, 꺼져달라고? 에이, 오빠는 꺼져달라는 말을 그렇게 안 돌려말해도 되는데-."



안 그래도 오빠랑 단둘이 밥 먹는게 거북해죽겠는데, 꺼져달라는 말을 저렇게 돌려하는 구나? 우리 오빠 이미지 관리 오지네. 아무튼 오빠랑 밥을 다 먹고 김태형은 뭐하나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도로를 건너며 전화 걸리는 소리에 집중을 하고 있었을까. 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이 오빠가 얼마나 세게 내 팔을 잡아당기던지,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물론 팔이 안 빠질 뻔 했으면 내 목숨이 날라갔겠지만...



"야, 네 남친 목소리 하나 듣겠다고 네 목숨 없어지겠다."


"헐... 오빠 좀 멋있네."


"이제 알았냐."



물론 저런 말을 할 때면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오빠랑은 집에서 보자며 헤어지고, 학교 앞에서 김태형이랑 만나는데 얘가 곧 시험 기간이라서 그런 걸까. 얼굴이 참 피곤해보였다. 좀 전에 오빠가 김태형이랑 같이 마시라며 사준 커피를 내미니, 또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는다. 웃는 모습을 보니까 생각난 건데, 다른 애들한테 대하는 게 김태형의 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때문에 괜히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게 아닐까 싶어서 괜한 걱정이 들었다.




"태형아, 너 나한테만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응? 아닌데?"


"어? 너... 다른 여자 애들한테는 진짜 무섭다고 하던데...?"


"그래? 그러려고 그런게 아닌데, 그냥 할 말만 한 거야."



아, 하하. 넌 할 말만 하면 그렇게 무서워지나보네. 오늘도 김태형의 이중성(?)에 놀라고 반하고 있었을까. 어디 놔둔지도 까먹고 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려서 누군지 확인을 해보니, 지수 씨였다. 지수 씨가 웬일로 연락을 다 하지, 싶어 양쪽 손에 다 짐이 있는 탓에 어깨에 휴대폰을 대고,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으니 김태형이 자연스럽게 내 짐을 대신 들어주었다.



-"언니, 전화 하자마자 이런 말하기 좀 죄송한데, 혹시 부탁 좀 들어주실 수 있어요?"


"부탁이요? 뭔데요?"


-"저희 차기 연극을 준비하는데 여자 주인공이 사정이 생겨서 못하겠다고 했거든요. 시간도 얼마 안 남아서 주인공을 마땅히 해줄 사람이 없는데, 언니가 그 주인공 역할이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혹시 돼요?"


"되긴 하지만... 제가 방해가 안 될까요? 연극은 처음인데."


-"아, 정말요? 괜찮아요! 그럼 얼른 연극부실로 와주실래요? 대사는 최대한 줄여보는 방향으로 가볼게요! 아, 그리고 오빠한테는 말하지 말고 데리고 오면 안돼요!"



지수 씨가 정말 급해보여서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연극이 쉬운 것도 아니고... 막상 전화를 끊으니 무슨 생각으로 하겠다고 한 건지 앞길이 캄캄해졌다. 김태형에게 짐을 받고, 급한 일이 생겼다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수 씨가 여태동안 많이 도와줬는데 나도 도와줘야지...


연극부실에 들어가자마자 얼마나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던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지수 씨가, 언니-. 하면서 달려와 안기는데 예쁜 지수 씨의 얼굴에 잔뜩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언니, 진짜 고마워요... 언니 없었으면 망할 뻔 했어. 이게 언니 대본이에요. 그리고 키스신은... 딱 하나 있긴 한데, 티 안 나게 하는 척만 해주셔도 돼요. 장르가 호러 판타지라서."


"...호러 판타지요?"


"네, 혹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난 호러랑 뭐가 있나보다... 살면서 한번 해볼까 말까 한 연극인데, 그 수많은 장르 중에 하필 호러라니. 그래도 이제 와서 장르 하나 때문에 못하겠다고 할 순 없으니 대본을 찬찬히 넘겨보는데, 역시 주인공 역이라 그런지 대사를 줄여도 많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 많은 말들을 어떻게 외우나, 걱정투성이였는데 지수 씨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지 핫초코를 내밀며, 힘든 거 있으면 말하라고 웃어보였다.



"근데 왜 태형이한텐 말하면 안되는 거예요?"


"음... 나중에 연극 당일 날 오빠 놀래켜줘야죠. 언닌 안 그래도 예뻐서 무대 올라가시면 더 예쁠 거예요."



지수 씨가 옆에서 하도 많은 응원을 해줘서 그런지, 생각 외로 많이 힘들진 않았다. 그리고 대사도 어려운 내용들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이 대부분이여서 외우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 호러 장르라고 하지만, 막상 내가 연기를 하니 무서운 게 딱히 느껴지지도 않았다.




"oo 너 오늘은 연습 안 가?"




"응? 무슨 연습?"


"어, 너 몰랐냐? 네 동생 ㅇ,"


"어? 아하하, 지민아.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지금 교수님께서 부르셔서 그거 때문에 가는 길인데?"



김태형만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지수 씨 연극을 도와준다고 다 말을 해서 그런지, 숨기기가 참 어려웠다. 차라리 다 비밀로 할 걸... 이렇게 연극하는 사실을 숨기는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박지민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눈짓(?)을 준 후, 한숨을 푹 쉬며 연극부실로 들어왔다. 이제 어느 정도 연습을 하다보니, 이 장소도 익숙해졌고 이 환경도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근데 연습을 하다보니 느낀 건데, 나도 나름 여자주인공 역할인데 왜 남자주인공이랑은 한번도 대사를 맞춰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부족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 연극하는 날짜도 많이 다가와서 한번 쯤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언니, 오늘은 남주 분이랑 맞춰볼 거예요!"


"아, 정말요?"



딱 타이밍 좋게 남주 하시는 분과 대사를 맞춘다는 지수 씨 말에 조금은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이상한 의미(?)로는 아니고. 혹시나 남자 분께 방해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을까. 연극부실로 익숙한 얼굴이 등장해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을 뻔 했는데 간신히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김지수, 넌 부탁한 사람이 오라가라 명령질 해? 왜."


"오빠, 오늘 여주 분이랑 대사 맞춰야지. 자, 인사해."


"...김태형?"


"oo?"

'Text 1 > 건드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10  (0) 2019.07.13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09  (0) 2018.01.09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07  (0) 2017.12.29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06  (0) 2017.12.22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05  (0) 2017.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