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려
안녕, 난 정국이다. 잠시만 oo 대신 내가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음, 그러니까 언제지? 내가 윤기 형이랑 술을 사러 나왔을 때, 그래 수요일. 수요일 밤에 지민이는 oo네 집에 있고 나랑 윤기 형 둘이 술을 사러 나왔는데 우연히 슈퍼로 들어가는 김태형을 발견했다. 딱 봐도 쟤 ooo 좋아해서 들이댄 것 같은데 눈치고자 ooo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김태형-. 어디 가냐? 너도 oo 집 가서 술 마실래?"
"어? 아, 안녕하세요 선배."
"오냐, 너도 가자."
물론 나랑 윤기 형이랑 대충 작전을 짜고 김태형을 데려가기로 이미 결정을 해놨었다. 갑자기 붙잡고 끌고 와서 얘도 좀 당황한 것 같았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 oo를 안심하고 맡겨도 될 놈인지 알아야지, 우리가. 오랜 만에 마시는 술이라서 편의점 앞에서 나랑 윤기 형이 얼마나 소주를 쭉쭉 들이켰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김태형에게 미안했다, 아주 많이.
"야아, 김태형아. 너 우리 oo 좋아하지?"
"어?"
이자식 당황하는 것 좀 봐라, 뻔하다 뻔해-. 김태형에게도 맥이긴 했지만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아서 결국 윤기 형과 나만 미친 사람처럼 취하고 말았다. 사실 이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김태형이 양쪽으로 우리를 들쳐매고 집으로 돌아왔었지, 아마?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ooo한테 등짝 스매싱을 오조오억대는 맞은 것 같았다. 그럼 빠이-.
***
"미안, 내가 전화 못 했었네...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전정국이 문자로 알려줬어. 집이야?"
"응, 네가 집 앞까지 데려다 줬잖아."
-"아, 혹시 주말에 시간 돼?"
호, 혹시 이거 데이트 신청? 스피커로 하지 않았는데도 옆에서 민윤기가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안되겠다 싶어서 얼른 민윤기 옆자리에서 벗어났다. 이제야 마음이 놓여 침대에 누워서 시간이 된다고 말하니 연극을 보러가자 길래 냉큼 좋다고 말했다. 연극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나도 우선 김태형의 속마음이 궁금하기도 하고 더 알아가고 싶었다.
"oo야, 윤기 형이 너 좀 데려오래."
"...뭐?! 이제 우리 약속은 완전 개무시하기로 한 거야, 뭐야. 싫다고 전해."
"안돼, 윤기 형이 너 안 데려오면 집에 안 들여보내준다고 했단 말이야."
"오지마!"
민윤기 이 인간이 우리 약속은 잊어버린지 오랜가 보다. 저번 부터 김태연 앞에서 아는 척을 하질 않나, 이제 온 동네방네 우리가 사촌 사이라는 걸 소문 내고 싶나보다. 사촌이라고 말하면 다행이지, 애들이 다 윤기 선배랑 사귀는 거야?! 하고 물어봐대서 진짜 혀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거기에다가, 뭐?! 발도 두개 다 있으면서 왜 나한테 오라 마라야, 지가 오면 되지! 아무 잘못없는 박지민한테 괜히 화풀이를 했다.
"아, 왜 부르는데!"
결국 난 지민이의 불쌍한 눈빛에 이기지 못하고 친히 민윤기가 있는 곳까지 행차해줬다. 내가 바쁘면 말이라도 안 하려고 했다, 근데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아주 여유롭게 이어폰까지 꼽고 음악감상을 하고 있는 민윤기를 보자마자 아주 살인충동이 절로 일어났다. 하지만 근처에 보는 눈이 많아서 차마 실행까지는 못하고 마음 속으로 꾹 삼켰다.
"너 이번에 교양 때 같이 할 파트너 없잖아."
"와, 천하의 민윤기 님이 저 같은 애랑 같이 과제 하실려구요? 영광이네, 근데 꼭 여기까지 불러내야 됐어?"
"밥 먹자."
"단둘이?"
"설마, 김태형이랑."
"아니, 걔는 왜? 오빠 솔직히 불어, 오빠가 걔 좋아하는 거지? 예전부터 이상했어."
헐, 몰랐는데 진짜였어? 민윤기 취향이 그런 쪽이라니... 어쩐지 암만 예쁜 여자들이 다가와도 꿈뻑도 하지 않았다. 항상 나한테 막아달라는 부탁만 했지. 그래, 게이니까 그런 거였어. 여태동안 같이 살면서 왜 민윤기 취향을 몰라줬을까... 난 나쁜 동생이었어...
"그런 거 아니거든. 이상한 생각한다, 또. 박지민이랑 전정국도 같이 간다고. 네 친구도 부르던가."
"아니, 웬일로 오빠가 쏜데? 그 많은 사람들한테."
"내가 쏜다고 한 적 없는데, 더치페이야."
아... 하긴, 그래. 오빠는 밥만 같이 먹자고 했지, 사준다고 한 적은 아예 없었다. 그렇구나,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뭔가 이상하다 했다. 설현이나 불러야겠다. 우리 설현이 좋아하겠네.
몰랐는데 오빠는 참 멋있는 남자였다. 대가족처럼 밥 먹는 우리를 냅두고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말해놓고선 계산을 다 해놨단다. 김설현이 그걸 보고 얼마나 멋있다는 둥 그러던지, 하긴 밥 값 내주는 모습은 멋있긴 했다. 밥을 다 먹고 나왔는데 이 사람들이 다 짠듯이 약속이 있다고 사라져 버리더니 거짓말처럼 나랑 김태형만 남겨져 있었다. 마지막 마무리를 해주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우리 둘에게 들려왔다.
"야, 김태형. 너 우리 oo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줘라. 안 그러면 너 방금 먹은 거 네 눈 앞에서 잔치 열게 해줄 테니까."
어쩜 말을 해도 저렇게 더럽게 하는지. 오빠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는 나와는 달리 착한 김태형은 오빠한테 얼마나 싱글벙글 웃어주던지, 오빠가 사라지고 나서도 변함 없었다. 그리고 날 내려다보더니 얼른 가자며 내 팔을 이끌었다. 암만 생각해도 쟤는 천사가 분명해, 김천사. 하지만 그 다음 날, 김설현한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김태형 걔 여자 애들한테 엄청 차갑다고 유명해. 그냥 성격은 되게 착한데, 좀 꼬셔보려고 다가오는 애들한테는 얄짤 없어."
"근데 내 앞에서는 천사 같던데?"
"멍청아, 그거 너 좋아해서 그런 거잖아."
"진짜로? 아, 설마 설마 했는데..."
주위에 이상한 놈들 (전정국, 민윤기, 박지민)이 하도 김태형이 나 좋아한다고 그래서 긴가 민가 하긴 했지만 미친 놈들이라서 그 말은 믿지 않았다. 근데 김설현이 이렇게 진지방구한 얼굴로 얘기를 해오니 뭔가 믿음이 가기도 했다. 그 덕분에 김태형 옆에 있으니 그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막상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김태형과는 달리, 나만 너무 이 상황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바뀐 거 아니야?!
"어?!"
"어? 내일 내가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아, 아 괜찮은데..."
오늘도 평소처럼(?) 김태형이 우리집 앞까지 날 데려다주는데 벌써 내일이면 주말이었다. 아, 뭐 입을 지 벌써부터 고민 되네... 김태형과 하는 대화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을까, 우리 둘 사이에 뭔가 붕- 하고 날라오더니 그대로 김태형 품 안에 장착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애였다. 아, 근데 나보다는 훨씬 어려보이고 귀엽고 예쁜 걸...? 하핫-.
"오빠 여기서 뭐해?"
"아, 이 언니 집에 데려다주고 집 가려고. 넌 왜 여기 있어."
"나 이제 수업 끝나서 집 가려고 했지. 안녕하세요, 언니-."
와, 웃는데 진짜 요정 같다. 근데 인사를 하는 도중에 이상한 생각들이 들었다. 김태연 부터 시작해서 김태형은 항상 여자 애들 앞에서는 틱틱 거리면서 차갑게 굴었는데, 이상하게 이 요정 앞에서는 나한테와 같이 천사처럼 대해주고 있었다. 아, 그럼 호, 혹시 여자친구? 난 그저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온 건가...? 아, 역시 김칫국이였구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언니, 이제 날씨 많이 추워졌는데 그렇게 입으면 추워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춥데요."
내가 오만가지 생각을 할 무렵, 나와 김태형 사이에 있던 요정 아이는 내 옷차림을 보더니 춥다면서 코트 단추를 잠궈주었다. 뭔가 천사 같은 느낌이 김태형과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던 찰나, 우리집 앞까지 도착했다. 요정 아이의 정체도 모르고 궁금증이 가득한 상태로 나는 집에 들어와 버렸다. 도대체 누굴까,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뭐랄까, 부러웠다.
"표정이 왜 이래, 김태형이 안 데려다줬어?"
"아니, 데려다줬는데 중간에 어떤 요정 만났어."
"요정? 미쳤네?"
"아니, 진짜 요정 같았다니까. 김태형이랑 친한 것 같았어. 나한테도 엄청 착했고."
"뭐야, 라이벌이네."
"라이벌은 무슨, 오빠 혼자 김칫국 원샷한 거잖아."
"너도 같이 마셨으면서."
정-답! 오빠 말이 맞아서 솔직히 반박할 수 없었다. 요새 들어서 김칫국을 안 마셨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솔직히 잘 모르는 남자 애가 나한테 잘 대해주는데 혹시나 하고 생각하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물론 아직 내가 김태형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확실했다.
"표정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 추워?"
"어? 아니, 아무 것도..."
밤새 생각하느라 다 늦은 새벽이 돼서야 잠을 이뤘다. 아, 진짜 피곤해서 억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죽겠네, 악의는 없는데 계속 정색만 나와서. 그리고 어제 요정의 정체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냥 눈 딱 감고 누구였냐고 물어볼까? 나한테 물어볼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정말로 궁금해서 알고 싶다는 건데, 안 그래?
"맞아!"
"어?"
"아... 아니, 야, 근데 어제 그 여자 애는 누구야?"
"여자 애? 아, 걔 내 동생."
아, 동생이구나. ...뭐라고, 동생?! 그럼 내가 새벽동안 생각한 그 요정 아이의 정체는 김태형의 친동생이였구나. 뭔가 회의감이 물 밀듯 쓸어 들어왔다. 도대체 그럼 난 여태동안 뭘 한 거지. 민윤기의 말에 의하면 '질투심' 이라고 하던데, 그럼 난 김태형 친동생한테 질투심이라는 걸 느꼈단 소리잖아?
"왜?"
"아... 되게 예쁘길래, 누군가 했지. 어쩐지 너 닮아서 되게 예쁘네."
"네가 더 예뻐."
아, 어쩌지... 나 진짜 민윤기 말대로 김태형 좋아하나봐. 왜? 라는 김태형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만히 있다가, 말도 안되는 말들을 줄줄 내뱉었는데 김태형은 또 내 말을 참 잘들어주었다. 거기에다가, 네가 더 예뻐 라며 마지막 한방을 날려주는데 정말 시간이 멈춰진 듯 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 이번에는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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