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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건드려

[김태형 빙의글] 건드려 12

건드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완벽히 이 연극 동아리에 적응을 해버렸다. 친화력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왜냐면 이미 연극 동아리 사람들은 나와 김태형의 정체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 웬만해서는 다 꿰뚫고 있었다. 내가 무슨 과인지, 심지어는 어떤 수업을 듣고 있는지 까지 알고 있어서 솔직히 조금 지릴 뻔 했다... 무서운 사람들이야.

 

그리고 내가 동아리에 들어와서 처음 맡게 된 역할이 악녀가 될 뻔 했는데, 지수 씨가 강력하게 반대를 해서 여주인공 옆에서 칠칠치 못하게, 착하게, 도와주는 친구 역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여주인공이라는 분이, 내가 저번에 연극 공연에서 여주인공을 맡게 되기 전에 하던 분이였는데 뭔가,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정말 어려운 사람이다. 차라리 연기상에서의 캐릭터가 덜 어려운 기분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응, 근데 아까 딕션이 너무 안 들리지 않았어? 똑바로 발음하도록 해. 발음이 연기만큼이나 생명이니까."

 

"아, 네에..."

 

 

날 만나자마자 초면에 반말을 틱틱 내뱉고... 아, 하긴 나보다 한 학년 선배니까 그건 이해를 한다. 나는 나보다 어리던 나이가 많던 초면에는 다 존댓말을 하는데, 그건 당연히 동아리에서도 해당이 된다. 그래도 나랑 같은 사람이 아니니까 그건 이해를 하는데, 내 앞에서의 성격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성격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래서 지수 씨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김태형한테도 못 물어보겠다. 이 선배가 김태형한테 특히나 아주 잘해준단 말이지.

 

 

"태형아, 이거 마시고 해. 안 힘들어?"

 

"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웃긴게 항상 적정 선을 지켜서 내가 김태형한테 붙어다니지 말라고 말을 할 수도 없다. 나한테만 이렇게 대우를 하는 것 같아 불만이 가득했는데, 이걸 말할 사람이 없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지수 씨나 김태형이 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때면 항상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게 대다수다. 아... 안 되겠어, 다른 애들한테라도 말해봐야겠다.

 

 

"야, 너희들. 잘 만났다. 내 얘기 좀 들어봐."

 

"와, ooo. 얼굴 보기 너무 힘들어. 우리 수업 친구냐-. 수업 때만 만나고?"

 

"조용히 해봐. 야, 나 동아리 들어가서 만난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원래 내가 갑자기 맡게 된 그 공연에서 내가 하기 전에 여주인공 맡은 분이래. 근데 그 선배가 나한테만 진-짜 까칠해. 웃긴게 다른 사람들한테는 엄청 천사같이 잘해주신단 말이야? 이거 질투라고 생각하면 안돼! 내가 엄청 객관적으로 봤단 말이야. 그래서 김태형이나 지수 씨한테 말을 못하겠는 거야. ...어우, 오늘도 완전 잔소리 바가지로 듣고 왔어."

 

"뭐야, 누가 우리 oo 괴롭혀. 나한테 데리고 와." -지민-

 

 

"그 선배라는 사람, 너 질투하는 거 아니야? 자기가 원래 맡던 역할 뺏어간 애라고 생각하겠지, 뭐." -설현-

 

 

"근데 그 선배가 못하게 돼서 내가 맡게 된 건데도? 나는 아무 잘못 없는데..."

 

 

"야, 그런 년 신경 쓰지마. 왜 괜히 동아리 같은데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고 그러냐?" -윤기-

 

 

"김태형한테도 잘해준다고? 야, 김태형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정국-

 

 

분명 내가 얘기할 때는 전정국이랑 설현이만 있었는데, 갑자기 박지민이랑 오빠도 나타나서는 옆에 붙어서 얘기를 듣고 있었다. 각자 상반된 반응을 보여서 나로서는 그 상반된 반응에 각자 대답해주는 게 너무 힘들었다. 어휴, 이 사람들... 내가 얘기 하나 해줬다고 되게 흥분하시네, 고맙게시리. 

 

더 썰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마침 김태형이 등장하길래 이쯤에서 썰을 그만 풀기로 하고, 이 네명에게 입을 꾹 다물라는 눈짓을 주고 김태형을 맞이했다. 휴... 넌 좋겠다. 동아리 사람들한테 예쁨 받아서. 아, 물론 그 선배만 아니면 나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들고 괜찮다. ...어우, 짜증나. 내일은 또 어떻게 만나?

 

 

 

 

***

 

 

 

 

"무슨 고민 있어? 요즘 동아리 때 힘들어 보이는데..."

 

"아? 아니, 갑자기 안하던 일 해서 그런가... 아무 일도 없어."

 

"그래? 그럼 오늘은 쉴래? 너 혼자 빠지기 그러면 나도 같이 빠질게."

 

"엥,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가자."

 

 

사실 오늘은 컨디션도 별로에다가 선배를 만나서 잔소리 바가지로 들을 생각을 하니까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입맛도 없어서 끼니도 제대로 안 챙겨 먹어서 그런가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거의 반 좀비, 반 미라 처럼 다니는데 만나는 사람 마다 상태가 다 왜 그러냐고 묻긴 했었다. 김태형도 물론.

 

 

"너 장난으로 하는 거 아니지? 똑바로 다시 맞춰보자."

 

"네에."

 

 

연기를 하는 것보다도 이 선배와 사회생활을 하는 게 더 힘들었다. 항상 둘이서 맞춰볼 때마다 이렇게 까칠하게 나한테 명령질을 하거나, 아니면 싸가지 없게 또 명령질을 한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유독 참기가 더 힘들었다. 왠지 연기를 하다가 눈물을 줄줄 쏟아버릴 것만 같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언니, 몸 상태가 안 좋아보여요... 오늘은 이까지만 하고 그냥 쉴래요? 제가 사람들한테 대신 말 전해드릴게요."

 

"아... 그래줄래요? 좀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있다보니까 상태가 좀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서요... 미안해요, 지수 씨."

 

"아니에요, 언니. 괜찮아지면 꼭 연락해줘요. 오빠도 같이 불러줄까요? 언니 데려다주게."

 

"아, 김태형한테는 그냥 말하지마요. 나 어디갔냐고 물으면... 그냥 친구들이 급한 일로 불러서 가봤다고, 그렇게 전해줘요. 아프다는 얘기는 하지 말고."

 

 

"...음. 알겠어요, 언니. 조심해서 들어가요."

 

 

지수 씨가 다행히 쉴 수 있도록 먼저 말을 꺼내줘서 다행이었다. 동방 근처에 있으면 김태형을 마주치거나 혹은 동아리 사람들을 마주칠 것 같아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갔다. 아, 집에 가면 민슈가가 무슨 일 있냐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아무 말도 해주기 싫을 것 같은데 어쩌지. 그냥 아무 것도 안 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들어왔는데, 내 똥 씹은 표정을 보고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온 오빠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어디 아프냐? 하고 새삼스럽게 내 걱정을 해왔다.

 

 

"그냥 밥을 안 먹어서 그래."

 

"네가 웬일로 밥을 안 먹는데? 동아리에서 끼니는 꼬박꼬박 준다면서. 너 혹시 그 이상한 년 때문에 그래?"

 

"어우, 오빠. 그래도 모르는 사람인데 년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야, 그래도 너한테 그따구로 대하는데 이름 불러줄 가치도 없다. 그래서, 뭐하는 앤데. 그냥 김태형한테라도 말해보지 그래. 걔는 네가 하는 말 믿어줄 거 아니야. 여자친군데."

 

"아... 그런가. 근데 김태형한테 얘기한다고 뭐가 달라져. 내가 그 동아리를 나와야 그런 상황이 안 일어나지, 안 그래? 그렇다고 동아리 나가기엔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나가기도 좀 그렇고... 일부러 나 불러줬는데 그러면 미안해서."

 

 

"넌 미안한 것도 많다. 그러면 네가 그 선배라는 사람한테 그런 대우 받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건 아니지만..."

 

"네가 말 안 한다고 하면 나도 딱히 다른 말 할 생각은 없지만, 그냥 생각 잘하라는 거야. 네가 그런 대우 받는 건 절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건 기억해."

 

 

"...오빠 웬일로 좀 멋져보이네. 고마워."

 

 

 

 

***

 

 

 

 

"언니, 몸은 괜찮아요? 그때 얼마나 걱정했는데... 오빠가 계속 언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하고 물어봐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 고마워요. 지수 씨... 그때 연락 못해줬었는데 먼저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감동이었어요."

 

"에이, 별 것도 아닌 걸요. 아... 지수 씨 부른 건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요."

 

 

뭔데요, 하고 몸을 내 쪽으로 조금 당기는 지수 씨 행동에 정말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싶어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사실 김태형한테 먼저 말하려고 했지만 그럴 용기는 더더욱 나지 않았다. 참 이상하게도. 지수 씨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수 씨한테 말하는 것보다 김태형이 나를 더 믿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에 대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이유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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