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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빙의글] 닿을 수 없는 너 02

큥큥 뛰어다녀 2019. 12. 7. 12:29

닿을 수 없는 너

 

 

 

 

 

 

 

 

 

 

 

 

고민이 많아져, 회사에 오자마자 대충 할 일을 끝내놓고 흡연실에 담배를 피러 왔다. 넌 내가 담배피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었다. 결혼을 하자고? 당연히 장난이겠거니, 했는데 진심이였단다. 당연히 나도 지금 와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런 생활을 원한 건 아니였다.

 

 

[ 너 담배 피고 있지? ]

 

 

테이블에 얌전히 올려둔 휴대폰이 밝아지길래 뭔가 하고 슬쩍 눈길을 줬는데, 순간 심장이 빨리 뛰었다. 너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내 행동을 대놓고 보고 있다는 듯 문자를 보내와서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모르겠다. 잠깐 담배연기를 멍 때리며 보다가, 급히 담배를 꺼버리고 흡연실에서 나왔다.

 

 

[ 예쁘니까 봐줄게. ]

 

 

흡연실에서 나오자 마자 다시 휴대폰 화면이 밝아지더니, 문자 한 통이 더 왔다. 솔직히 어떻게 답을 보내지 고민을 했는데, 먼저 이렇게 나와주니 고마웠다. 고맙다는 답장을 대충 해놓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 옆에 예쁘게 자리잡은 액자에 시선이 갔다.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너와 내 모습이 너무나도 예뻐보였다.

 

 

 

 

***

 

 

 

 

고등학교 시절엔, 내가 먼저 널 좋아했다. 3학년 때, 점심시간 마다 자주 배드민턴을 치기에 나도 너를 따라 친구와 배드민턴을 쳤고. 네가 전교회장 선거에 나와서 나는 너를 뽑고. 같은 학년이지만 층수가 달라서 5층에 있던 나는 항상 너를 보기 위해 4층까지 발걸음을 굳이 옮기고. 나는 그랬다.

 

 

"좋아해."

 

 

참 이상하게 고백은 네가 하더라.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게 부끄러워져 졸업식 예행 연습을 하는 내내 심장이 두근 거려 어떤 일이든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일이 바로 졸업식인데, 이제 와서 고백을 해버리면 학교를 떠나는 내 입장이 어떻겠어. 조금만 더 빨리 말해줬으면, 혹은 내가 먼저 고백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졸업식 전 날 밤을 새며 어린 시절 나는 깊게 고민을 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그 나이에 맞게 본능에 충실한 답변이었다. 나도 좋아해. 그렇게 우리는 졸업식 날과 동시에 연애를 시작했다. 공부를 워낙 잘하는 너와는 반대로 그저그런 성적을 가진 나는 역시 대학교도 그저그런 학교에 입학해 그저그런 학교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가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충동적으로 자퇴를 해버리고, 자격증과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떠떳하게 대기업 디자인 회사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좌절의 덩쿨에 빠져있는 나에게, 너는 항상 잘 될거야, 응원해, 이런 추상적인 긍정적인 말만 내뱉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뻔히 너와 다른 내 현실이 눈 앞에 대놓고 보이는데, 비교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딱 한번, 네 얼굴에 대고 심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 이유 때문이었다.

 

 

"너는 네가 잘 나니까 세상이 다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보이지?"

 

"..."

 

"난 아니야. 나는 매일 매일이 지겹기만 하고, 점점 밑으로 떨어지는 내 현실이 와닿고 있어. 잘난 너랑 다르게 뭐든지 잘 되고, 좋은 일만 일어나고, 그런게 아니라고."

 

 

"oo야, 울지 말고 얘기해. 끝까지 네 말 들을게."

 

 

그때 네가 한 말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만 말하라거나, 혹은 미안하다거나, 아니면 화를 내거나 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서러움에 나도 모르게 펑펑 울면서 말을 꺼냈는데, 넌 울지 말라며 다정하게 날 안아주고, 끝까지 내 말을 들어주겠다며 약간의 미소를 덧붙였다. 스무살의 너는 그렇게 나에게 어른스러웠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땐, 내가 처음으로 너에게 완전히 마음을 연 날이었다. 아무리 연애를 하더라도 내 전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매우 싫어했다. 언제 버림 받을지 모르는데, 내 모습을 전부 다 보여줬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때나 지금이나 걱정이 많은 건 당연했다. 내 현실이 날 그렇도록 만들었으니까.

 

 

 

 

***

 

 

 

 

"언제부터 기다렸어?"

 

"5분 정도..."

 

 

"춥겠다. 몸은 이제 괜찮아?"

 

"응, 목 아픈 건 없어졌어."

 

 

회사 일이 끝나자 마자 바로 너의 회사 앞으로 달려왔다.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내 마음에 좀 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자기가 매고 있던 목도리를 내 목에 둘러주며 몸은 괜찮냐며 물어왔다. 매일 저녁 마다 목 아픈 날 위해서 따뜻한 꿀물을 만들어주는데, 그런 네 정성에 다 나아버렸지.

 

 

"회사 마치자 마자, 너 보니까 너무 좋다. 매일 매일 보고 싶어."

 

"매일 매일 보잖아."

 

"응,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어."

 

"...우리 결혼하자, 정국아." 

 

 

 

 

***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우리 둘은 평소와 똑같았다. 뭐 달라질 게 없으니까. 집에 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손을 씻고 저녁 준비를 하려고 하는 너를 잠깐 세워 품 안에 안겼다. 몇년 째 너를 안는데, 이 품은 항상 따뜻하고, 설레이기만 했다. 

 

 

"밥 뭐 먹고 싶어?"

 

"김치 볶음밥."

 

"알겠어. 그럼 결혼식은 언제할까?"

 

"올 봄에 하자."

 

 

자연스럽게 결혼식 날도 정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식은 겨울에 올리고 싶었다. 겨울엔 내 생일이 있고, 춥지만 내가 워낙 좋아하는 계절이니까. 하지만 너와 올리는 결혼은 언제가 되던 상관 없었다. 따뜻한 봄도 좋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도 좋고, 선선하고 맑은 가을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겨울도 좋았다. 

 

 

"조금만 더 일찍 하고 싶은데.."

 

"언제?"

 

 

"겨울에. 네 계절이잖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