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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빙의글] 이젠 끝이길 09

큥큥 뛰어다녀 2019. 9. 30. 11:01

이젠 끝이길

 

 

 

 

 

 

 

 

 

 

 

 

사내연애라니. 내가 사내연애를 해볼 줄은 꿈에도 몰랐네. 김태형이랑 헤어졌을 때 다짐한 건, 절대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다, 가 나의 철학이 되어버렸는데 그게 며칠 가지도 않고 바로 깨져버렸다. 매일 매일 간질거리는 기분 좋은 느낌과 출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게 아니라 너무 좋았다. 

 

 

"석진 오빠도 나랑 같은 회사 다녔어야 했는데-."

 

"에이, 야, 어디든 장단점이 있는 거야."

 

"뭐, 하긴... 그렇긴 하지만, 나는 오빠랑 결혼 할 거라서, 뭐."

 

 

"뭐야, 선배는 너랑 결혼해주신데?"

 

"오빠가 나한테 결혼하자고 프로포즈 했는 걸."

 

 

너무도 담담하게 결혼 얘기를 하는 수지가 신기했다. 나는 꿈도 못 꿔본 결혼이라는 단어니깐. 어렸을 때 까지만 해도 결혼에 대한 환상도 있었고, 꼭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버리고, 일도 하니 결혼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생각들이 조금 바뀐 나로서는 수지와 석진 선배가 좀 부러웠다.

 

 

"너는 지민이랑 결혼 안하려고?"

 

"에...? 결혼을 목적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야, 우리 만난지 일주일 됐거든? 일주일 만나서는 무슨 결혼이야."

 

 

"뭐, 하루 만나도 결혼 확정인 사람들도 있지 않냐?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근데... 이제 김태형은 연락 안 와?"

 

 

수지가 조심스럽게 김태형을 물었다. 김태형에 대해서는 진작 까먹고 있었는데, 연락이 안 온걸 보니 나와 지민이가 사귀고 있다는 걸 이미 알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알아준 게 다행인 것 같다. 잠시 뿐일 감정 때문에 나와 다시 사귀는 건 나한테는 물론, 김태형 한테도 득이 되진 않을게 분명했다.

 

 

 

 

***

 

 

 

 

"고마워, 지민아. 집 들어가면 연락해."

 

 

"응, 내일 보자."

 

 

오늘도 집 앞까지 날 데려다준 지민이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와 가방에 집어넣은 휴대폰을 꺼냈다. 꺼내자마자 휴대폰에 익숙한 번호가 뜨고 있었다. 저장은 돼 있지 않았지만 김태형이 확실했다. 처음엔 받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번호를 보면 볼수록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민이에겐 많이 미안하지만 전화를 받아버렸다.

 

 

"왜."

 

-"어, 전화 받았네에..."

 

 

취했다. 목소리가 분명 취해있었다. 술에 잔뜩 쩔어있는 김태형의 목소리를 듣는게 이상하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술에 취한 상태여서 제대로 얘기를 할 순 없을 거라고 느껴져 그냥 다음에 얘기하자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냥 마지막 인사하려고... 전화했어. 구질구질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 아직 너 많이 좋아하거든... 그것도 다 정리할겸 전화하고 싶었어. 네가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줘..."

 

 

목소리에 울음도 섞여있었다. 김태형이 굳이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나에게 이런 전화를 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져,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은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김태형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해버려 나까지도 눈물을 쏟아낼 뻔 했지만,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꾹 참았다.

 

 

"응, 고마웠어. 잘 지내고."

 

-"응, 너도... 진짜로 고마웠어, oo야."

 

 

끊었다. 전화를 끊어도 그 여운이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지민이한텐 미안하지만 이 일은 그냥 평생 혼자 간직하고 싶었다. 지민이에게 이해해달라고 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긴 하지만, 오늘 딱 한번만 이기적이여야겠다. 

 

 

 

 

***

 

 

 

 

수지에게 결혼 얘기를 들었던 게 며칠 전이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청첩장을 이렇게 받는다고? 너무 드라마 같은 상황에 깜짝 놀라 하루종일 어버버- 거렸다. 선배도 제법이잖아? 이렇게 수지한테 프로포즈를 딱- 하고 결혼까지 골인하다니? 내 앞에선 그런 똘똘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모든게 의외였다.

 

 

"3개월? 근데 지금이 9월이니까... 조금만 더 넉넉하게 잡아서 봄에 식 올리지."

 

 

"음, 근데 오빠가 최대한 일찍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오빠 말 들어보니까 나도 그런 것 같아서, 헤헤. 최대한 일찍 날짜 잡았어."

 

 

주위에 가까운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하니 내가 더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이었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지민이도 기분이 싱숭생숭 했는지 딱히 더 말을 꺼내지 않고, 놀랍다는 눈으로 수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수지가 가고 지민이와 마주 앉아서 서로 청첩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왠지 어색해지는 느낌이었다. 왜지...?

 

 

"oo야, 너는 결혼 안 하고 싶어?"

 

"결혼...? ...사실 생각은 안 해봤어.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어렸을 땐 환상 같은게 많았었는데, 지금은 현실을 좀 알게 돼서."

 

 

"현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래. 근데 이렇게 수지 청첩장 받으니까, 나도 너랑 결혼 하고 싶다."

 

 

회사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박지민! 그만 하라며 지민이의 무릎을 두어번 치니 알겠다며 다시 웃음을 지어버린다. 그러다 문득 나도 지민이와 결혼한 삶을 잠깐 생각했는데, 기분 좋은 상상이 자꾸 들어 나도 지민이와 같은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너도 상상했지?"

 

"뭘?"

 

"나랑 결혼하는 상상."

 

"...너 혹시 내 머리 속에 들어왔어?"

 

"그냥. 나랑 똑같이 웃고 있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