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1/이젠 끝이길

[박지민 빙의글] 이젠 끝이길 04

큥큥 뛰어다녀 2019. 9. 20. 09:47

이젠 끝이길

 

 

 

 

 

 

 

 

 

 

 

 

"여보세요? 석진 선배?"

 

-"어어, oo야. 오랜만이지? 뭐하고 있었어?"

 

"저 좀 전에 퇴근하고 집에 왔어요. 웬일이세요? 통 연락도 없으시더니."

 

 

석진 선배는 김태형의 친 형이다. 음, 엄밀히 말하자면 석진 선배 덕분에 나랑 김태형이 만나게 되었지. 석진 선배는 나랑 같은 학교에, 두 학년 선배였다. 군대를 다녀온 덕분에 나랑 수업을 듣게 되어서 친하게 지내게 됐는데 그때 우연히 김태형의 존재를 알게 되고 친하게 지내게 되어서 사귀기 까지 했지.

 

 

-"그냥 잘 지내고 있나 해서. 요즘은 태형이 안 만나? 얘 집에만 박혀있던데. 쟨 아무 것도 안해서 바쁜 건 아닐 테고, 혹시 네가 바쁜 건가 해서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해봤어."

 

"아... 김태형이요? 음... 저희 헤어졌어요, 선배."

 

-"어? 아... 헤어졌구나. 김태형이 말을 안 하길래 모르고 있었어. 그랬구나... 하긴 김태형 표정이 요즘 계속 안 좋고 밥도 안 먹고 그러길래 싸운 건가 하고 생각은 했었어."

 

 

표정도 안 좋고, 밥도 안 먹고, 지도 힘들어할 거면서 도대체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석진 선배가 다음에 또 연락할게, 라고 인사를 하길래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김태형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영 좋진 않았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훅- 내 머리 속에 들어와버렸다, 너는. 

 

 

 

 

***

 

 

 

 

"어디가?"

 

"나 외근. 워크샵 들렸다가 바로 퇴근하라고 하시네."

 

"그래...? 혼자 갈 수 있어?"

 

 

"얘도 참. 나 운전 짱 잘하는 거 봤지? 다녀올게. 내일 보자. 오늘은 같이 퇴근 못 하겠네."

 

 

갑작스럽게 워크샵에 다녀오라고 하셨지만, 뭐 일찍 퇴근하는 좋은 선물이 끼여있으니 마다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회사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묘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지각할 뻔 해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무슨 생각으로 지민이한테 운전 짱 잘한다고 말한 거지? 나도 나를 알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하고 머리 속으로 고민하다가 또 택시를 타야겠다 싶어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순간 김태형이랑 닮은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아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야. 닮은 사람이겠지..."

 

 

순간 당황해버려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 쪽으로 다가가는데 갑자기 후다닥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그와 동시에 내 손이 누군가에게 붙잡혔다.

 

 

"...김태형?"

 

"하아... 너 어디가?"

 

 

"뭐?"

 

 

뭐야, 나랑 김태형이 어디가냐고 물을 사이라도 됐던가. 갑작스러운 김태형 행동에, 나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걸 말을 해줘도 이상하고, 어쩌라는 거야? 김태형을 흘긋- 바라보니, 얘도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미안 하고서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어제 석진 선배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이상했다.

 

 

"우리가 이렇게 아는 척 할 사이는 아니잖아.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줄 테니까 이만 가봐."

 

 

"..."

 

 

내가 이렇게 김태형을 잘 떨쳐낼 줄은 몰랐다. 나 배우 해도 되는 건가? 김태형을 떨쳐내자 마자 내 앞에 있는 택시에 탔다. 김태형 쪽은 보지도 않았다. 나를 보던지, 아니면 내 말대로 갈 길을 가던지 궁금해 하는 내 자신을 막았다. 솔직히 그렇게 힘들어할 거면 왜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한 거냐고, 김태형을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못 버틸 것 같아서 꾹 참았다. 

 

 

 

 

***

 

 

 

 

아, 젠장... 워크샵 갔다오니 왜 시간이 회사에서 일 하다가 퇴근한 시간이랑 똑같은 건데?! 난 분명 2시도 안 돼서 나갔다고... 늦어도 4시 쯤이면 퇴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확하게 6시 반에 마쳤다. 너무 지쳐서 좀 전에 김태형을 만났다는 사실도 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터덜 터덜- 걸어가는데, 우리집 앞에 누가 서있길래 깜짝 놀라 흠칫- 했는데, 익숙한 모습이었다.

 

 

"...김태형?"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는 거지. 아, 물론 두번째지만... 난 한 번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다. 다시 좀 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아 김태형을 밀어버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김태형이 또 다시 내 손을 붙잡아왔다. 얘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지가 헤어지자고 했으면서. 그럼 쿨하게 보내줘야 되는 거 아니야?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아까는 네가 그냥 가버려서..."

 

"할 말? ...뭔데. 듣기만 하고 집에 들어갈 거야."

 

 

집에 오는 동안 찬 바람을 많이 맞아서 그런가, 가만히 서 있는데도 몸이 조금 떨리는 기분이었다. 그 작은 반응도 보인 건지 김태형은 집에 들어가서 얘기해도 되냐며 우리집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나도 그게 더 좋을 것 같긴 했다. 재빨리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함께 들어왔다.

 

 

"말해."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고 이러는 것도 진짜 웃긴데... 우리 다시 만나면 안될까? 나 진짜 너 없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진짜 하루도 못 버티겠어... 진심이야."

 

 

솔직히 이런 모습의 김태형은 상상도 못했었다. 먼저 헤어지자고 아주 당당하게 말해오길래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끝이구나, 싶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나 또한 무지 당황스러웠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감도 잡히지 않았다. 

 

 

"순서가 틀렸잖아. 그 생각은 네가 헤어지자고 나한테 말하기 전에 했었어야지."

 

"...미안해."

 

"어차피 여기서 너랑 나랑 다시 만나봤자 이렇게 똑같이 끝날 거야. ...나도 지금 너랑 마주보고 있기 힘든데, 꾹 참는 거야. 네가 하는 말 때문에 솔직히 지금 떨리기도 해. 아직 널 좋아하니까. 근데 나 이제 너한테 벗어나려고. 네 말대로 더 좋은 남자 만나볼게."

 

 

내가 한 말을 죽도록 후회할 것 같긴 하다. 내가 그 정도로 아직 김태형을 많이 좋아하니까. 김태형한테는 별로 티를 안 냈지만, 정말로 김태형을 많이 좋아한다. 김태형한테 다시 만나면 안되냐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부터 쏟아낼 뻔 했으니까. ooo, 진짜 잘한 선택일까...? 뭐가 그렇게 잘 났길래 단호하게 말하는 건지. 역시 나는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