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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너로 인해

[민윤기 빙의글] 너로 인해 03

너로 인해

 

 

 

 

 

 

 

 

 

 

 

 

집에 도착하자 마자 교복을 벗어던지고, 잠옷으로 갈이입고서 혜리의 말대로 꿈나라 속에 금방 빠질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본능에 앞서, 좋아하는 것들도 눈에 안 보인다고 하던데. 나는 이 말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너무 아픈 지금만큼은 윤기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잠을 잤는 지도 모르겠고, 사촌 오빠인 지민의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죽을 먹었다. 평소에는 장난끼가 많은 그였지만, oo가 너무나도 아파보여서 그런지 장난을 칠 분위기가 아닌 걸 잘 아는 모양이었다.

 

 

"너 담배 펴서 감기 걸린 거야."

 

"...어떻게 알았어?"

 

 

"모르는 게 이상하지. 이모도 알고 계실 걸? 너 냄새 장난 아니야."

 

 

oo는 엄마께 담배에 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고, 엄마께서도 별 말이 없길래 당연히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담배 냄새를 없애고 집에 들어온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지민의 말이 옳았다. 윤기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새 윤기로 인해 많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본 oo는 이렇게 계속 지내도 되는 건가, 무기력 해졌다.

 

 

 

 

***

 

 

 

 

한손으로 담배곽을 꽉 잡아 구겼다. 그리고 대충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등교를 하는 중이다. 어제 아픈 날을 보내며 곰곰이 생각을 했던 oo는 윤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그렇다고 그를 좋아하지 않겠다는 건 절대 아니였다. 그렇게 바닥만 뚫어져라 보면서 등교를 하고 있던 oo는 갑자기 누군가의 품에 부딪혀버려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상대를 보지도 않은 채 죄송합니다 하고 연신 꾸벅- 인사를 했다.

 

 

"...어?"

 

"뒤에서 불렀는데, 왜 돌아보지를 않아?"

 

 

"아... 불렀었어? 미안... 멍 때리고 걷느라 못 들었나봐."

 

 

상대를 다시 보니, 윤기였다. 윤기가 뒤에서 저를 불렀다고 하니, 괜스레 기분이 조금씩 좋아졌다. 실실 웃고 있는 그녀를 보더니, 왜 웃어? 라며 흘긋 쳐다보는 윤기였고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윤기는 정면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너 어젠 왜 갑자기 없어졌어? 라며 어제 일을 꺼내왔다. 

 

 

"어제... 조퇴 했었거든.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잘-한다. 그럴 줄 알았어. 지금은?"

 

"어제 쉬고 나니까 오늘은 많이 괜찮아졌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냥 꾸중을 듣는 것 같겠지만, oo는 윤기의 말에서 충분히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함께 학교로 오자마자 윤기는 oo의 팔을 툭 쳤다. 학교에 오면 바로 담배를 피러 가는 둘이였기 때문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뜻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담배곽을 버려버린 행동을 떠올리며, 나 끊었어 라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잘했어."

 

 

처음이였다. 윤기가 자신에게 활짝 입동굴을 보여주며 진심을 담아서 말해주는 것은. 항상 무뚝뚝함의 정석인 그가 다정하게 말하는 적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관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꽤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지켜본 oo는 당연히 거의 성격을 전부는 아니지만 대충이라도 알고 있었다. 저런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은. 

 

 

"언제까지 억지로 피나 했다."

 

"...억지로 핀 건 아닌데."

 

"억지로 핀 거 맞거든. 아무튼 잘했어."

 

 

아무튼 잘했다며 oo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윤기였다. 그를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 거리는 일은 잦았지만, 지금은 미친 듯이 빠르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쉽 때문일까. 담배 끊은 걸 다시 한번 잘했다고 생각하는 oo였다.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해서 윤기와 떨어질 일이 생긴 건 아니였다. 급식 줄을 서 있는 동안, oo의 등에 기대 휴대폰 게임을 하던 혜리는, 거 봐! 라며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해왔다. oo는 혹시나 바로 앞에 있는 윤기가 이 얘기를 듣지 않을까 싶어 그녀의 입을 손바닥으로 꾹- 막았다. 서둘러 앞에 있는 그를 바라보았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못 들었나봐, 다행이다.

 

 

 

 

***

 

 

 

 

"윤기야-. 같이 집 가자!"

 

"어."

 

 

'윤기' 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는 oo로서, 갑자기 수업 끝날 때 쯤 되니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서 '윤기' 라는 단어가 나오니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복도에 있던 oo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는 그의 이름을 부른 여자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본 아이임이 틀림 없었다.

 

 

"호석아, 저 애 누구야?"

 

 

저의 쪽으로 다가오는 호석을 붙잡고, 여자 아이와 윤기가 있는 쪽으로 친히 얼굴을 돌려준(?) oo는 저 애 누구야? 라며 영문도 모르는 호석에게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뒷통수만 보고 누군지 알아맞추라고 하는데 호석은 당연히 모르는 게 당연했다. 

 

 

"쟤 오늘 우리반에 전학온 앤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혜리가 옆에 있는 oo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점점 사라지는 윤기와 여자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oo는 그 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오늘 전학 왔다고? 라며 재차 물었다. 혜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원래 알고 있는 사이겠네? 라며 추론을 하기 시작했다. 명탐정 코난으로 빙의한 두 사람의 옆에 끼지도 못하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만 있는 호석이였다. 

 

어쩌다보니 세 사람은 윤기와 여자 아이를 미행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따라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왠지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미행을 하게 되어버렸다. 혜리에게 들은 바, 이름은 손승완. 캐나다에 유학 중이였는데 며칠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고등학교를 다니게 됐다고 한다.

 

 

"근데 우리 이렇게 따라다녀도 되려나..."

 

"어어! 야, 건물로 들어간다."

 

"미술 학원? 민윤기 학원 다녔었어?"

 

"아니... 학원 안 다닐텐데."

 

 

"그럼 손승완이 다니는 거겠네? 학원까지 데려다 준 건가?"

 

 

호석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혜리와 oo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학원 앞에 서서 두 사람이 열심히 추론하고 있는 도중, 호석이 뒤로 보이는 윤기를 먼저 발견하고는 두 사람에게 그만하라며 등을 툭- 쳤다. 눈치를 챈 두 사람은 쥐 죽은 듯 땅바닥만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당연히 아는 얼굴들이 그렇게 이상하게(?) 있으니, 뭐지 하고 궁금증이 생긴 윤기는, 뭐하냐? 라며 먼저 말을 친히 걸어왔다.

 

 

"어... 비 올 것 같아서..."

 

 

보아하니 호석과 혜리는 입 뻥긋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최대한 머리에서 쥐어짜낸 말을 내뱉었는데, 비가 오려고 하기에는 하늘이 너무 맑고 쨍쨍했다. 그녀의 말에 하늘에 잠깐 시선을 둔 윤기는, 비? 라며 재차 물음을 던졌고, 옆에 있던 혜리가, 아 오늘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라며 그녀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근데 너는 왜 여기서 나와?"

 

"사촌이 오늘부터 여기 학원 다니는데 길을 잘 모른다고 해서 같이 와줬지."

 

 

사촌이라는 말에 아주 티나게 안도의 한숨을 쉬어버린 oo였다. 윤기는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고는 피식- 웃더니, 그럼 난 간다 라며 먼저 등을 돌렸다. 그가 가고 남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던 세 사람은 따라오길 잘했다며, 특히 혜리와 호석은 제 일인 마냥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