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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청량 (淸涼)

[전정국 빙의글] 청량 (淸涼) 02

청량 (淸涼)

 

 

 

 

 

 

 

 

 

 

 

 

주말에는 오전 타임에만 알바가 있어서 괜찮겠다 싶어 일요일에 보기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는데, 왜 날짜 요일 구분도 못하고 무작정 oo 씨 한테 전화를 했던 걸까. 나도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이였는진 모르겠다, 전혀.

 

아무래도 나랑 있는 동안 oo 씨는 옷 걱정을 내내 한 것 같았다. oo 씨한테 말한 것처럼 난 정말 솔직하게 얘기했다. 편하게 나온 차림이 어때서? 꼭 소개팅을 할 때 예쁘게, 차려입어서 나와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난 오히려 oo 씨가 편하게 입고 와서 더 편하게 그녀를 대할 수 있었으니까. 예뻐보였다고 한 말은 정말 진심이었다. 석진이 형 내 스타일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마음에 들었어?"

 

 

"응. 아, 형. 원래 내일 만나기로 했는데 나 오늘로 착각해버렸잖아..."

 

-"엥? 그래서 만났어? 걔 오늘 옷 사러 간다고 나한테 그러던데. 너 볼 때 입을 옷."

 

"아... 들었어. 늦어가지고 그대로 전화해버렸잖아. 어디냐고. ...oo 씨가 마침 나와있어서 그냥 위치를 말해주셨다고 하더라고. 아, 진짜 전정국 미친놈이지. 날짜 확인 좀 제대로 할 걸."

 

-"풉, 야, 너 좀 대단한데? 근데 oo 걔도 네가 마음에 들어서 위치를 말해준 거 아닐까. 물론 난 정확하겐 모르지만. 그럼 잘 해봐라, 끊는다."

 

 

석진이 형과의 전화를 끊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따뜻한 온기가 날 감싸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둔 빈 캔커피가 보인다. 그냥 버리고 왔으면 됐는데 왜 집까지 굳이 들고 온 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유없이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 물음을 던져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oo 씨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 따뜻함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일까. 

 

 

 

 

***

 

 

 

 

결국 옷은 못 샀다. 아, 당연히 어제 정국 씨를 만나서 못 산 거지만... 그래도 어제 일로 정국 씨는 너무 차려입는 것보다는 조금은 자연스러운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오늘은 어제만큼 편하게는 아니지만, 니트 롱 스커트를 입고 위에도 큰 니트를 입어서 예쁘지만 조금 편안할 수 있는 스타일로 골랐다. 밖을 나서니 어제보다 오늘이 더 추운 것 같았다. ...정국 씨 많이 춥겠다.

 

정국 씨가 혹시 밖에서 기다릴까봐 걱정돼 서둘러 약속 장소로 후다닥 뛰어갔다. 어제 한번 봤기 때문에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단번에 정국 씨 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근데 정국 씨 앞에 여자는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감사하지만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말투와 내용을 들어보니 모르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그래, 딱 봐도 정국 씨 인기가 많아보인다. 여자에게 정중히 거절을 하고 뒤를 돌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여자에게 보였던 무표정인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싱긋- 예쁜 미소를 짓는데 추위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어떡해, 나 또 반했어.

 

 

"정국 씨, 인기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안 추웠어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네요."

 

"저는 정국 씨 처럼 추위 많이 안 타요. 헤-."

 

 

분명 정국 씨는 핫팩을 가져왔겠지, 싶어 나는 핫팩을 뜯지 않고 가져왔다. 혹시 정국 씨 핫팩이 온기를 잃으면 그때 새거를 뜯어서 주려고.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왔다. 사실 한달 전부터 정국 씨와 데이트를 하게 되면 어딜가지, 하고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찾은 곳이다. 이 곳의 천장은 둥글고, 천장이 투명하게 돼 있어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그리고 식사를 끝난 후에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도 즐길 수 있어서 내가 자주 오는 곳이지.

 

 

"와, 이런 곳은 처음 와봐요."

 

"그쵸! 제가 한 달 전부터 정국 씨랑 올려고 찾아, 음... 다 들으셨죠."

 

"한 달 전부터 날 알고 있었어요?"

 

 

"...사실, 석진 오빠가 누구랑 연락하는 걸 우연히 봤는데 그 상대가 정국 씨인 거예요. 사진을 보고 반해서... 오빠한테 소개 시켜달라고 계속 부탁을 했었어요. 그런데 계속 거절을 당하기도 하고, 오빠한테도 매번 부탁하기 미안해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고 부탁했는데, 정국 씨가 해보겠다고 하셔서... 너무 기뻤어요."

 

 

그제서야 석진 형이 여자 소개를 해주겠다는 말을 왜 꺼냈는지 이해가 되었다. 두 검지 손가락을 이리저리 꼬으며 나와 눈도 못 마주치고 말을 하는데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기분이 나빴을 법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 외모만 보고 그냥 무턱대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외모로만 평가 당하고 싶지 않았는데 oo 씨한테 그걸 당했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미안해요... 물론 처음엔 오직 정국 씨 외모만 보고 끌렸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정국 씨 외모는 물론이고, 내면까지도 좋은 사람인 걸 어제 알게 되어서 오늘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던 거예요. 믿어주세요..."

 

 

계속 테이블만 바라보다가 믿어달라는 말을 하며 내 눈을 바라보는데 이 말은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거짓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확신이 들자마자 바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니, 손가락을 이리저리 꼬고 있는 oo 씨 두 손을 한 손으로 잡아주며, 믿어요 라고 내 마음을 전했다.

 

 

 

 

***

 

 

 

 

실내에 있지만 넓은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의자가 없고 그냥 카페트가 깔린 바닥에 앉는 카페라 치마를 입고 있는 oo 씨를 위해 옆에서 담요를 가져와 다리에 덮어주었다. 따뜻한 실내라 그런지, 커피에 있는 얼음이 쉽게 녹는 모양인지 컵에 물방울들이 많이 맺혀 있었다.

 

 

"정국 씨 추운 건 싫어하면서 커피는 아이스 마시네요?"

 

"아, 네에. 음료는 차가운 걸 좋아해서요. 아, oo 씨 나이를 안 물어봤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 스무살이요. 나이 차이 꽤 나죠?"

 

 

스무살? 앳되게 보이긴 했지만 당연히 내 또래라고 생각했다. 군대도 다녀왔고 지금 4학년인 내가 스물다섯인데. 5살 차이면 그렇게 큰 차이도 아니지만 작은 차이도 아니었다. 난 이제 4학년도 다 끝나고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oo 씨는 얼마 전에 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니 기분이 약간 묘했다.

 

 

"혹시 어린 사람 안 좋아하세요...?"

 

 

내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바로 눈치 챘는지, 어린 사람을 안 좋아하냐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오는데 이 표정을 보고 어떻게 안 좋아한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싶다. 어린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어른스러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맞다. 내 성격이 하도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나와 더 잘 맞겠다는 생각이 크다. 하지만 oo 씨는 겉모습은 어려보이지만, 속은 나보다도 꽉 찬 어른 같았다.

 

 

"좋아해요."

 

 

...뭐야, 좋아해요? 좋아한다는 말은 지금 나를 좋아한다는 건가? 아, 당연히 아니겠지... ooo, 정신 차려. 당연히 어린 사람이 좋다는 거겠지... 김칫국 한통을 원샷해버린 것 같아 고개를 작게 도리도리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아, 히터가 너무 세네.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다. ...히터 때문이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